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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창세기

가인과 아벨

by 행복두드림 2023. 3. 16.

창세기4:1-7절

“가인과 아벨”

 

오늘 말씀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3절에서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아주셨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과 그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까닭을 가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분하여하고 안색이 변합니다.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같은 가인의 마음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그가 화내는 이유를 물으십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은 가인의 재물이 옳고 그르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가인이 바친 제물이 아니라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그의 태도가 온전하지 않았음을 보신 것입니다. 본문의 가인이 분노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사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예배입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만족스러웠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느냐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예배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온전한 예배자였다면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았을 때,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온전하지 않았던 모습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오히려 그것을 분하게 여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인의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절도 보겠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

 

이어지는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인을 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지 못할 때 죄악의 욕심이 즉시 나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죄악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하나님 한 분만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한 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까닭은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내 인생의 왕으로 임하실 때 그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음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온전하지 못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는 예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안을 삼기 위해 예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위로와 안식을 얻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하는 예배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는데 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열랍하셨을까요? 성경 한 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11:4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첫 번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 하나님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혼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온전히 감사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으시고 이 시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의로운 자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벨을  ‘의로운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각과 계획, 행위와 태도가 모두 하나님 앞에 정당했고 신실했습니다. 가인보다 제물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믿음의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요한1서3:1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아벨의 행위는 언제나 의로움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위해 그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였고, 하나님을 만족 시키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예배여야 합니다.

셋째, 의로움으로 드리는 예배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숨겨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 심지어 나의 속 마음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충성스럽게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