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열왕기상.하

사명이 생명입니다!

by 행복두드림 2023. 3. 22.

열왕기상19:8-18절

사명이 생명입니다

 

지난시간 대단한 현장에 우리는 있었습니다. 850대1의 싸움이 일어났던 갈멜산 정상에서의 짜릿한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은 위엄있고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불이 임하여 제단위를 모두 사르고 난 후 결단력 있게 850명의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다 진멸하는 모습에서는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용감함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엘리야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심지어 한 여자 이세벨의 말에 완전히 인생을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과 싸운 사람이 맞아?라고 할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북쪽 갈멜산으로부터 정반대인 남쪽 브엘세바를 지나 광야로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19:4절을 보면 하나님께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이렇게까지 낙망하게 됐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 엘리야가 기대했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사건으로 인해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낙망한 것입니다.

 

간혹 설교자들이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기도하고 준비도 많이 했고 분명 이 말씀을 들으면 많은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설교를 했는데 전혀 미동이 없고 냉담함을 보일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 때문에 낙망하고 만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듯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18장에서는 불로 임하시기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던 하나님께서 19장에 와서는 이세벨의 위협에서도 자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18장만 놓고 보면 엘리야와 같은 사역자가 어디 있습니까? 완벽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잘난 사람도, 대단한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도, 가질 것 다 가진 사람도 분명한 건 하나님 없이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복인줄 믿습니다.

 

셋째,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 낙망합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있는 굴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그랬더니 엘리야의 말이 이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4절도 보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특심이었는데 그에 비해 열매가 없음으로 인해 낙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11:4-5절을 보면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사도바울은 엘리야의 사건을 두고 혼자가 아니라 남은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계획할 때 하나님은 돕는 자들을 붙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지쳐 있는 엘리야를 도우십니다. 7-8절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육신으로는 무엇인가 먹어야 힘을 얻듯이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힘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엘리야요 저와 여러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낙망하여 자신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였지만 하나님은 아직 그에게 사명이 있기에 천사를 보내 영육간에 힘을 공급하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한번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세가지 현상을 보여 주십니다. 11-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라는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나 그의 영광을 일시적으로 인간에게 보이실 때 사용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또 이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을 간절히 바라고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한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앞에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기적적 사건으로 엘리야에게 스쳐 지나가셨습니다.

 

바람과 불과 지진은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나님은 아닌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하나님은 분명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서 나타나시고, 지진 가운데나 불 가운데 나타나셔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의 생애를 보면 이런 이적과 기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크고 강한 바람, 지진, 그리고 불 가운데도 하나님을 계시지 않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엘리야는 850명과의 싸움에서 불을 내리셨던 하나님께 기대했던 것이 크고 강한 바람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가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를 부르시고 만나주시고 계십니다. 여기 ‘세미한 소리'고요하다'란 말과 '곱다'는 말의 결합어로서 섬세하고 대단히 미세한 것을 말합니다.

 

또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데, 성도들이 성령에 의해서 듣게 되는 내적 감동, 내적 음성을 뜻합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영적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미한 소리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음성은 심한 좌절과 무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큰 힘과 능력을 주어 참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한 좌절감에 빠져있는 엘리야에게 다시 한번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이처럼 섬세하게 엘리야를 도우시고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그에게 해야 할 일이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그 사명은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확신을 심어주시기 위해 17-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850대1의 싸움까지는 자신 혼자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영적 침제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와 주신 하나님께서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동역하는 일꾼들을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조력자들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나 외에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이들이, 경건한 이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경쟁자로가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엘리야에게도 영적 침체기가 왔습니다.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신앙생활하다보면 침체기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찾아와 위로와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육체적인 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무너진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 세미한 소리로 찾아오시고 고치시고 싸매셔서 다시금 사명의 자리에 서도록 도와 주십니다.

 

영적으로 흔들리기 쉬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생명을 얻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사방팔방 우리를 유혹하는 손길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위로의 손길을 붙잡으시고 다시 일어나 사명이 생명임을 기억하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