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의 완성자 되시는 하나님
욥 42:1-9
우리 자녀들이 많이 했던 놀이 중에 퍼즐 맞추기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두뇌개발과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교육용 퍼즐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장난감보다 아이들의 두뇌 개발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퍼즐들을 자녀들에게 사다 주기도 합니다. 퍼즐에는 많은 종류의 그림들이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맞추기 위해서는 방바닥에 흩으러 뜨려야 합니다. 보기만 해도 난감합니다. 20개, 30개는 쉽게 맞출 수 있지만 1,000개, 3,000개로 올라가면 쉽게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몇 시간이 지나 완성된 퍼즐 작품을 보면 성취감에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이것이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여 요양원이나 양로원에서도 수준에 맞게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퍼즐을 보면 우리 인생과 매우 흡사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퍼즐판에 퍼즐 한 조가만 가지고는 전체가 어떤 그림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흐트러진 퍼즐 조각을 보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보입니다.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고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우리 인생의 퍼즐은 1,000조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게 될 성경에 등장하는 욥도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왜 자기 인생에 일어났는지 알지 못해 탄식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었났지?’묻게 되고 그 해답을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욥1:1절을 보면 그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본문에서는 그를 완벽하게 좋은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악한 일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욥은 10명의 자녀를 두었고 소와 양 가축도 많았으며 재물 또한 무척이나 많은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거느리는 종들도 역시나 많았던 사람입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 바로 욥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가정에 갑작스런 고난이 몰려 왔습니다. 욥에게는 많은 종들이 있습니다. 어느날 종 하나가 급하게 욥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소와 나귀가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와서 그것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 종이 아직 말하고 있는데 다른 종 하나가 오더니 이번에는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태워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종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욥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큰 바람이 불어와서 집을 쳐 집이 무너지고 모든 자녀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슬펐는지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자른 후 땅에 엎드려 슬피 웁니다. 그러나 그는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런 말입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갈 때에도 아무것도 가지고 돌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신 것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욥의 고백처럼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하나님을 원망했을지도 몰라요. 너무 괴로워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욥도 인간이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히 갑니다.
그런데 욥의 멋진 고백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욥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욥의 몸에 갑자기 병이 생긴 것입니다.
여름철이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가 모기입니다. 그런데 그 모기에 물리면 어떤가요? 가려워요. 어떤 사람을 성이나서 짓물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즉 머리끝까지 아주 징그러운 종기나 났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려워서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가 않아 성경을 보니까 재를 뒤집어 쓰고 질그릇을 가져다가 몸을 긁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욥의 소식을 들은 세 친구가 찾아와 지금 당하는 고난에는 이유가 있으니 회개하라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욥기 4장부터 37장까지를 보면 욥과 세 친구들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토론의 주제는 ‘욥의 고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38장부터 41장까지입니다. 그 질문을 다 소개할 수 없지만 요약해서 이야기 하면 이렇습니다.
38:2-3절입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절 이하부터 질문이 시작됩니다. 전체를 다 볼 수 없겠지만 몇 가지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 눈 곳간에 들어가 보았느냐?
우박 창고를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사람이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느냐?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산에 사는 염소가 새끼 낳을 때를 네게 하느냐?
독수리가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것을 네게 명령한 것이냐?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욥이 해본 적이 없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1-3절입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체험한 한계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을 아는 것처럼, 다 아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다 알고 우주를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체험한 일들이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티끌에 티끌만도 못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욥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고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난 후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4-6절입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게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그동안 자신은 귀로만 듣는 신앙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야기로만 들었고, 교리적으로만 아는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직접 목도하였고 자신의 삶의 한복판에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간섭하시며 참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에게 일어난 고난의 퍼즐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고 욥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의 퍼즐 한 개로 힘들어하는 욥에게 전체 그림을 질문형식으로 보여 주었을 때 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앞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이라는 퍼즐 하나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이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욥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전체 그림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17:9-10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만드셨으며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는지도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고 오늘이라는 퍼즐을 잘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요, 약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 우리 주일학교 자녀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고난앞에서 넘어지고 실망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욥에게 교훈하고 가르치시고 싶었던 것이 바로 ‘욥아 너 인생의 주인은 나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 이시기에 언제나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당할 때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23편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인생 속에서 여전히 당신의 위엄을 드러내시며,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하나님, 여전히 자기 백성인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지금도 내 인생 전부를 책임지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449장 예수 따라가며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4절에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종이 주인의 말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어떻게 될까요? 매를 맞거나 쫓겨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도 잃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시간 예배의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말씀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순종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퍼즐 중 어려움을 만나고 환난을 만나고 사방 팔방으로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그림의 완성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충만한 복을 받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욥은 당대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연약한 인간임을 욥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그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말은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